본문 바로가기

interview

[공연人 이야기(인터뷰):29] "행복한 예술가가 되는 게 꿈이에요." 배우 박한근


 @Cafe O'Fete

with 배우 박한근

사진촬영 :  유민정

* 내외신문 인터뷰 풀버전입니다.(http://bit.ly/2DJ9b0a) *





<빈센트 반 고흐>에서는 무대 위에 오롯이 고흐만을 남겨두고 

<올슉업>에서는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랑이 넘치는 데니스를 표현해낸다.

두 작품을 넘나들며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한근 배우를 만나보았다.


 

Q. <빈세트 반 고흐>는 영상이 또 하나의 출연진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작품이잖아요. 

    연습실에서는 영상 없이 연습을 했을 텐데 어렵지 않았나요?

무슨 그림인지는 알지만 어떻게 들어오는지는 모르는 상태로 연습을 했어요. 공연을 영상으로 보는 건 쉽지 않거든요. 

왜냐면 제 나름의 캐릭터를 만들기 전에 다른 배우들의 영상을 보게 되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잔상이 남아서요. 

그런데 이 작품은 영상에 모든 큐가 몰려있더라고요.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연출님께 영상 보자고 이야기를 했죠. 

그래서 배우들이 다 같이 모여서 영상 보는 날이 있었어요. 

연습할 때 긴가민가했던 것들이 영상을 보니까 어떻게 그림이 움직이는지 알겠더라고요. 

연습 막바지에는 연습실 벽을 다 하얗게 만들고 영상팀이 들어와서 영상을 쏴줬어요. 그때는 연습하기 좀 편했죠.

‘영상을 안 본다’와 같은 맥락으로 OST도 잘 듣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빈센트 반 고흐>를 준비하면서 추석 연휴가 너무 길어서 OST를 들으면서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연휴가 끝나고 다같이 모여서 연습을 시작했는데 OST로 익힌 것과 악보가 다른 거예요. 

OST가 실황이다 보니 공연을 하면서 배우들의 연기적인 호흡이 섞여 있었던 거예요. 

OST음악이 귀에 익숙해져있는데 다시 바꿔야 해서 조금 고생을 했었어요.

 

Q. 동생인 테오는 언제나 형인 빈센트를 지지해줬어요. 배우님에게도 배우님을 지지해주는 테오 같은 사람이 있나요? 

    혹은 본인이 테오처럼 지지해주는 해주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항상 모든 동생들, 모든 형들에게 테오와 같이 해주죠. 일상생활이 제가 원래 테온데(웃음). 

전적으로 믿어주는 사람, 심적으로 믿어주는 사람. 있죠. 형들 중에는 태을이 형, 허규 형 

그리고 지금 <올슉업>에서 같이 하고 있는 호영이 형. 동생 중에는 승현이. 

다들 너무 친하니까요. 저를 전적으로 믿어준다는 것은 친함의 연장선인거 같아요. 

그만큼 친한 사람들은 제가 뭘 해도 전적으로 믿어주니까요.

저는 철저히 제사람을 챙겨요. 예전에 대학 동기가 해준 이야기가 기억이 나네요. 

대학교 동기 중에 점을 잘 보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한근아, 너한테 충고해줄게 하나 있어. 너는 열 송이의 장미를 열 사람에게 나눠주고 있어. 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해. 

 근데 그게 과연 잘 보이는 걸까? 열 송이의 장미를 한 사람한테 줘봐. 그럼 그 사람이 네 사람이 돼.”라고. 

약간 무섭더라고요. 정곡을 찔린 느낌이랄까요? 그 말을 듣는데 약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 내 사람 챙기기도 바쁜데 내가 잘 보이겠다고 남을 챙기는 건 미련한 짓이구나.’를 깨달았어요. 

어차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장미를 줘도 나를 싫어해요. 그 이후로 제 사람들을 더 잘 챙기려고 노력하죠.

 

Q. 사실상 이미지로 보면 테오도 어울릴 것 같은데요.

처음에 고흐로 제안을 받았지만 성격상, 이미지상 테오도 어울릴 것 같으셨는지 테오는 어떠냐고 물어보셨었어요. 

“아니요. 저는 고흐를 하겠습니다. 고흐가 더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고흐를 하게 됐죠. 

그런데 막상 공연이 시작하고 보니 테오도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같아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좋은 캐릭터 같아요.

 

 

Q. 이인극은 <빈센트 반 고흐>가 처음이신데 특별히 더 힘들진 않나요?

별반 다른 게 없는 것 같아요. 저는 항상 무대 위에서 100-120%를 쏟기 때문에 이인극이라고 특별히 더 힘들고 

등장인물이 많다고 덜 힘들고 그러진 않는 것 같아요. <알타보이즈>는 춤추느라 힘들어 죽을 뻔했고요(웃음). 

<고래고래>는 너무 힘들었어요. 죽을 둥 살 둥 형제들 챙겨야 되고(웃음). 항상 힘들었네요, 저는. 

‘박한근’의 필모그래피는 항상 힘들었습니다(웃음). 

어떤 배우든 무대에서 쏟는 에너지는 100%이상이기 때문에 공연은 항상 힘들어요.

 

Q. <빈센트 반 고흐>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참 힘든 공연인 것 같아요.

저는 <광염소나타>가 더 힘들었어요. <빈센트 반 고흐>는 밝은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광염소나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 밝아요. 등장 하자마자 사고를 내면서 미쳐가기 시작하거든요. 

100분 공연인데 한 시간 동안 울어요. 커튼콜까지도 굉장히 다운돼있었어요. 

그 당시에 일상생활에서도 좀 쳐져있을 정도로 제이에 너무 깊게 빠져있었기 때문에 <광염소나타>가 더 힘들었어요. 

<빈센트 반 고흐>도 힘들지만 지금은 <올슉업>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괜찮은 거 같아요. 

<올슉업> 보시면 깜짝 놀라실 수도 있어요(웃음).

 

Q. <올슉업>도 힘드신가요?

<올슉업>은 조금 달라요. 100% 에너지를 안 쏟는다는 말이 아니고요(웃음). 일단 극이 해피해서 덜 힘들어요. 

물론 1막에서는 춤추느라 힘들어 죽을 거 같아요(웃음). <올슉업>에서 춤을 정말 열심히 춰요. 

연습할 때 되게 잘 췄는데 데니스가 너무 잘 추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약간 데니스 화 시켜서 춤을 추고 있어요. 

그랬더니 보시는 분들이 춤 연습 좀 하라고 하더라고요. 저 억울해요! 저 <알타보이즈> 멤버였던 사람이라고요(웃음)!

 

Q.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던 빈센트. 배우 박한근은 어떤가요?

저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써요. 

제가 유명한 연예인은 아니지만 관객들 앞에 서야하는 배우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만 생각하면 속 편하죠. 하지만 보여지는 직업이다 보니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하지 않나 생각해요. 

관객이 없는 배우는 있을 수 없으니까요. 관객들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요. 

그렇다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쓴다고 해서 휩쓸리는 편은 아니에요. 나만의 중도를 열심히 지키고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참 힘들어요.

 


Q.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빈센트의 색채를 나타낸다고들 하죠. 그래서 빈센트를 따뜻한 화가라고들 하는데 

    ‘박한근’의 색채를 스스로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의 무대를 보신 분들이 평가하는 것과 제가 생각하는 건 좀 다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은 제가 그동안 맡았던 캐릭터가 다양하니 ‘여러 색을 가진 배우’라고 이야기해주세요. 

“안 어울릴 줄 알았더니 저걸 해내내? 이런 모습도 어울리네?‘란 말을 자주 듣는 편이에요. 배우로서는 감사하고 좋은 평가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저는 무조건 무채색이에요. 어떤 의미냐면 크게 변하지 않아요. 

무대 위에서는 배우로서 확확 변할 수 있어도 인간 박한근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Q. 혹시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시나요?

그림에 대해 얘기하면 2박3일 걸리는데(웃음). 제가 사실 중학교 때 꿈이 화가였어요. 그래서 화실을 3년간 다녔어요. 

그때 당시 밥 로스라는 화가 아저씨가 30분 만에 그림을 그리면서 계속 “참 쉽죠?” 하는데 

유화 그리는 게 말도 안 되게 너무 쉬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중학교 때 ‘좋아. 그럼 나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멋진 곳을 보면 그림을 그려서 팔고 

그 돈을 모아서 여행을 다니는 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화실 처음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소묘에요.

처음엔 자기 손가락 보고 그리기 6개월, 1년쯤 지나니 조각상을 주더라고요(웃음). 

조각상을 어느 정도 하니까 이제는 화병을 하나 주더라고요(웃음). 그러다 3년 다 지났어요. 유화까지는 가지도 못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3년 만에 그림을 포기했어요. 

왜냐면 3년 동안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중학교 때 미술점수가 거의 빵점이었어요. 

야외 나가서 풍경화를 그리는데 너무 못 그리는 거예요. 맨날 소묘만 했더니 풍경화를 못 그리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이야기했죠. “이 길은 제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그렇게 그만 뒀어요.

 

Q. 여행가시면 스케치 같은 건 안 하시나요?

절대! 지금은 사진으로 담죠. 저는 사진은 무조건 스마트폰으로 찍어요. 저 굉장히 잘 찍어요. 잘 찍는다고 장담해요(근부심). 

사진은 결국 시간인거 같아요. 좋은 사진 한 장을 건지려고 몇 시간이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한 것 같아요.

 

 

-- 박한근 배우가 여행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 --

 

Q. 빈센트는 자화상을 그리며 후에 자기응시라는 병으로 발전을 했다고 해요. 

    아마도 자괴감 등 현실적인 무게로 인한 병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배우님은 현실적인 무게를 마주할 때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저한테 있어서의 극복 방법은 유일무이합니다. 저는 떠나요. 

세상일을 뭘 하든 간에 외부의 일로 힘들어도 결국 그것도 나와의 싸움이잖아요. 

스스로 이겨내고 일어설 수 있어야 되는 건데 지금 속해 있는 곳에선 일어설 순 없거든요. 

그래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요. 그게 어디가 됐든 간에. 

여행은 계획을 아예 안 짜고 가는 스타일이에요. 정말 아예 안 짜요. 여행계획을 짜서 가면 볼 수 있는 게 똑같아요. 

그런데 아무생각 없이 갔다가 우연찮은 곳이 너무 좋으면 그 감흥이 정말 큰 거예요. 

그래서 계획 없이 가는 여행이 너무 설레요. 그 설렘이 저를 일으켜 주는 원동력이에요. 

잊게도 만들어주지만 리프레시 되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항상 계획 없이 여행을 가면서 많은 것들을 비우고 새롭게 채우고 전환하고 오는 것 같아요. 

계획을 짜면 그 계획대로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피곤하지 않나요? 물론 계획 없이 가서 숙소를 못 구한 적도 있지만요(웃음). 

하지만 모든 여행은 무계획이 좋아요. 예상치 못한 감동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Q. 빈센트는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거절을 당하다 그림을 만나서 인생이 변화했어요. 

    배우님 인생에 ‘나를 바꿔놓은 계기’가 될 만한 것을 만난 적이 있나요?

저의 터닝 포인트는 <모차르트 오페라 락>의 모차르트를 만난 거예요. 저도 빈센트처럼 살면서 이것저것 많이 해봤거든요. 

가수도 해보고 배우도 해보고 뮤지컬도 해보고 연극도 해보고 심지어 알바는 안 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예요.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유학 준비를 하던 시기에 <모차르트 오페라 락>을 만나고 다 포기하고 배우의 길만 가고 있는 거죠. 

모차르트를 만났던 때가 저에게는 배우로서 모든 걸 다 걸게 된 순간이었어요.

 

Q. 일을 할 때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타입인가요? 아니면 관대하신가요?

저는 스스로에게 관대하려고 해요. 작품을 할 때마다 자주 다치니까 ‘좀 살살 하자, 한근아. 제발 다치지 말자.’하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요. 그런데 연기적 본능이 내버려두질 않아요. 무대 위에 올라가면 자제가 안되요. 

물론 컨트롤은 하죠.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않는 연기는 좋은 연기가 절대 아니에요. 

항상 생각은 살살 하자하는데 무대 위에서 그렇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힘들긴 한데 제가 선택한 길이잖아요. 

‘박한근’이 그런 배우이니 그걸 거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저는 안되는 게 싫어요. 사람이니 안되는 게 있을 수 있죠. 

하지만 끝까지 노력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도 배우로서의 책임이죠. 

연기든 노래든 못 하는 게 싫어요. 못 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관객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요. 

물론 그렇다고 제 연기, 제 노래를 모든 관객이 다 좋아해주진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왜냐면 연기라는 것도 호불호가 있고 노래라는 것도 스타일이 있잖아요. 

제 목소리도 허스키한 특이한 목소리거든요. 이런 목소리를 안 좋아하시는 분도 있어요.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하죠. 

점점 나이 들고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일수록 힘든 게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잘 해야 돼요. 

어떤 배우도 무대 위에서 대충하지 않아요.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죠. 하지만 제 주의는 살살 하자(웃음).

 


Q. 그림에 모든 것을 걸었던 고흐. 그런 고흐를 어느 정도로 가까이 느끼고 있나요?

‘나를 건다’는 말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제 스스로도 나를 걸고 미친 듯이 연기와 노래를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싶지만 쉽지 않아요. 

이게 현재 제 인생에 전부인데도 말이죠. 재밌어서 하고 있는 건 확실해요. 무대 위에 있는 게 너무 행복하고 좋아서. 

그런데 고흐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물론 고흐도 그림을 그리는 게 당연히 좋았으니까 선택했겠죠. 

하지만 ‘그림을 과연 행복해서 그렸을까?’라고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죽기 전, 그 몇 년 동안에 말도 안 되게 그림수가 급격히 늘었어요. 과연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고흐를 연기하는 배우한테 왜 그랬을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왜 그렇게 자기를 다 던져가면서 오로지 그림을 그렸을까. 

그건 딱 하나거든요. 외로움이죠. 오로지 그 외로움 하나에 집중했어요. 

그림을 많이 그렸던 그 시기를 ‘고흐의 황금기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그림에만 몰두했던 시기다’라고 표현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고흐의 가장 불우했고 불안했던, 그리고 가장 힘들었고 외로웠던 시절이 그 때라고 스스로 판단했어요. 

왜냐면 아무도 말할 사람이 없고 너무 외로웠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그림 그리는 것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림의 개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외로움이 커졌던 거거든요. 견딜 수 있는 게 없어요. 

살아생전 그림은 한 점 밖에 못 팔았으니 돈이 없으니까 밥은 먹지도 못하고 매일 술만 마셨잖아요. 

얼마나 외로웠으면 그랬을까. 눈을 떴는데 아무도 없는, 그 작은 방안에서.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게 그림 그리는 것 밖에 없는 거예요. 그만큼 외로웠던 거죠. 저는 고흐의 외로움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고흐가 왜 자기 자신을 다 던질 수밖에 없었느냐, 너무 외로워서라고 생각해요.

 

Q. 고흐는 행복한 사람이었을까요?

작품을 분석하면 할수록 점점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요. 

저는 고흐가 가기 전에는 행복했을 거라고 분석했고 그렇게 연기를 했었거든요. 

물론 지금도 그렇게 연기하고 있어요. 밀밭에서 모든 걸 내려놓고 가니까. 

스스로 자살을 했는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총에 맞았는지 고흐의 죽음에 관해서 결국 고증은 되지 않았어요.

아무튼, 마지막에는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점점 생각이 변하고 있어요. 

제 연기가 조금 달라지고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요. 

‘고흐가 행복했을 것이다’라는 건 현실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행복의 척도라고 전 생각해요. 

저는 고흐가 너무 불안하고 불우했고 너무 힘들게 갔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밀밭에서는 모든 걸 털어내더라도 고흐가 죽기 전까지의 삶에서 괴롭고 힘들었던 고흐를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자화상부터 제가 일부러 목소리를 바꿔서 불러요. 

그래도 끝까지 지켜주는 테오가 있어서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은 그게 그 분의 행복의 척도이겠죠. 

어떤 사람은 한 명도 없어도 행복할 수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백 명이 있어도 안 행복할 수도 있는 거고. 

행복의 척도는 각자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그 사람의 행복의 척도를 표현할 수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는 고흐가 행복했을지 모르겠어요. 왜냐면 그 척도는 너무나 다르니까.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만은 확실해요. 죽기 직전에 너무 안타까웠고 너무 힘든 인생을 살다 갔구나하는 건 누구나 다 알잖아요. 

빈센트가 행복했을지는 아무도 몰라요. 빈센트만 알겠죠.

 

 

Q. 지금 연기하고 있는 빈센트와 이전에 연기한 모차르트는 실존인물이고 <올슉업>의 데니스나 이전에 연기했던 J는 

    가상인물이잖아요.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을 접근하는 방법이 다른가요?

배우로서는 다르지 않아요. 차이점이라고 하면 빈센트나 모차르트는 실존인물이기 때문에 더 조사할 수 있는 자료는 많아요. 

자료가 많아도 이걸 표현하는 건 배우마다 달라요. 

이번엔 박한근만의 빈센트를 보여줄 수 있을까가 숙제였어요. 실존인물이라서 더 어려웠어요. 

가상의 인물이면 어떻게 만들어도 다 제 것이라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득만 시킬 수 있으면 되요. 

(모차르트는 어떠셨어요?) 모차르트도 엄청나게 분석했죠. 두꺼운 모차르트 전집을 다 읽어가면서 분석했어요. 

두꺼운 책이 총 네 권이었는데 2권까지는 연습하면서 계속 읽고 3권부터는 공연 중간에 계속 읽었어요(웃음). 

(다 읽으셨어요?) 다 읽었죠! 공연 끝나기 전까진 다 읽어야겠다 마음먹었거든요(웃음). 대구 가져가서 읽고 그랬었죠.

쉽게 접근하면 또 쉬워요. 근데 제가 또 성격이(웃음). 쉽게 접근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표면으로 보여 지는 고흐와 모차르트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이들의 아픔, 외로움, 힘듦을 보여주고 싶었지, 천재 모차르트, 천재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저는 이들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고 얼마나 인간적으로 힘들고 외로웠는지를 보여주면 

자연스럽게 설득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Q. 최근에 어두운 극, 소위 관객들 사이에서 ‘멘탈탈곡극’으로 불리는 공연을 주로 하시다가 <올슉업>하시니까 어떠세요.

되-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너무 행복한 작품이기도 하고. 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이 작품이 너-무 따뜻한 거예요. 

그 안에 각자의 사랑이야기들이 너-무 안타깝고 너-무 따뜻하고 너무 좋아요. 

매번 멘탈이 남아나질 않았는데 뭔가 사랑이 채워지니까(웃음). 물론 데니스는 프로 짝사랑러지만 너무 따뜻하고 너무 좋은 거예요. 

배우들끼리 <올슉업> 오픈런으로 맨날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요. 그 정도로 배우들이 힐링을 받고 가는 작품이에요. 

제가 항상 멘탈 탈곡만 할 순 없잖아요. 더 이상 탈곡할 멘탈도 없어요, 이제(웃음). 

그런데 관객 분들은 제가 자꾸 죽고 힘들어 하는 역할을 하는 걸 원하시는 것 같아요(웃음).

 

Q. <올슉업> 관람 포인트를 알려주세요.

전 몰랐어요. <올슉업>이 그렇게 사랑스러운 작품인지. 모든 캐릭터의 사랑이 다 나와요. 

1막 마지막에 모든 캐릭터가 서로가 각자의 위치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장면이 있어요. 

<올슉업>은 주인공 엘비스를 필두에 두고 모든 사람들의 사랑이야기가 곳곳에 다 들어있어요. 

데니스, 산드라, 짐, 나탈리, 실비아,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모---든 사랑이야기가 다 있어요. 

심지어 자세히 보시면 앙상블도 다 커플끼리 계속 같이 나오거든요. 남남커플도 있어요. 

저는 남자앙상블이 더 많아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의도적인 커플이더라고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랑, 다양한 사람들의 사랑이 들어있어요. 그래서 너무 너무 예뻐요.

 

Q. <올슉업>에서 좋아하는 넘버가 있나요?

노래들이 진짜 다 좋아요. 전 처음에 데니스 내 노래만 좋은 줄 알았어요. 

“무조건 데니스 할래.”할 정도로 데니스 노래 좋아했어요. 그런데 노래가 다 좋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실비아 노래예요. 실비아 노래 중에 제가 <올슉업> 전체 중에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있어요. 

‘돌아보면 있잖아’라고. 실비아가 노래할 때 소대에서 보고 있어요. 보고 있으면 눈물이나요. 

‘돌아보면 있잖아’라는 말이 특별한 말이 아니잖아요. ‘난 여기 있는데 넌 왜 돌아보지 않아’ 이런 얘긴데 너무 슬픈 거예요, 진짜. 

데니스인 저를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고요(웃음). 너무 짠하고 공감이 가요.


 

Q. 몽니콘서트 <Grown up 2018> 연습 중이신데 어떤 작품인가요?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에요. 정말 풋풋했던, 손 한번 잡는 것도 쑥스러워하던 그 시절이 생각났어요. 

일 본영화 보는 거 같아요. “뭐야, 끝났어?” 이렇게 끝나거든요. 정말(웃음). 

대본 처음 받았을 때 “끝났어? 대본 뒤에 복사 안 해온 거야? 끝난 거야 이게?”그랬어요(웃음). 

정말 일본영화 보는 거 같아요. 초연할 때 다들 그랬대요. 관객 분들이 나가지도 못하고 “뭐야, 끝난 거야?” 그랬대요. 

일본 영화같이 풋풋한 과거를 보여 주는 게 컨셉이에요.

 

Q. 빈센트와 데니스, 어느 쪽 인생을 살고 싶으신가요?

너무 어렵다. 둘이 같이 공존했으면 좋겠어요. 현실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지만 모두가 다 안 힘들었으면 좋겠어요. 

힘들지 않고도 할 수 있거든요. 행복할 때 더 많은 걸 쏟아 부을 수 있어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행복의 기준은 달라요. 

‘행복한 예술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행복할 수 있고 힘들더라도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행복한 예술가’가 되는 게 꿈이죠. 너무 어려운 이야기에요. 힘든 이야기고. 그리고 저도 그 ‘행복’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개인적인 실력의 성장인지, 관객이 많이 찾아주시는 건지, 개런티가 올라가는 건지, 많은 작품을 하는 건지. 

모든 게 다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있지만 그런 건 아닌 거 같아요. 

배우의 숙명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할 수 있는 작품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 내가 차지할 수 있는 행복이 있는 거니까. 

어쨌든 행복한 예술가가 되는 게 꿈이에요.

 

 

여행 이야기를 하며 사진을 보여주고 본인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던 박한근 배우는 천진난만한 아이같았다.

(아마도 말리지 않았다면 2박 3일은 이야기할 기세로!)

고흐의 이야기를 할 땐 마치 빈센트를 옆에서 지켜본 듯한 절친한 친구의 모습이었고

데니스의 이야기를 할 땐 사랑이 넘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행복한 예술가’를 조용히 읊조리더니 생각에 잠겼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던 '행복'에 대해 생각 하는 듯했다.

박한근 만의 '행복'의 척도를 여전히 만들어가고 있는 그이기에 

'행복한 예술가'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배우 박한근이 앞으로 무대에서 보여줄 '행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