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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공연人 이야기(인터뷰):28] "제가 맡은 작품이 진실하고 용기 있었으면 좋겠어요. " 배우 김준겸

No. I028



2017.12.03 @소극장 알과핵

with 배우 김준겸

사진촬영 :  윤빛나

* 내외신문 인터뷰 풀버전입니다.(http://bit.ly/2BIlKw6 / http://bit.ly/2kQ1QVv) *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서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 

김준겸 배우가 바로 그렇다. 어느 무대에 있어도 단단해보여 일단 무대에 있으면 안심이 된다.

뮤지컬 <아나키스트의 아내>에서 이회영 역을 맡은 배우 김준겸을 만나보았다.



Q. 원래 꿈이 배우였나요?

꿈이 굉장히 많았는데 기록에 남겨져있는 첫 꿈이 개 조련사더라고요. 그러니까 아무 생각이 산거죠. 

어릴 때는 제가 어머니께 어머니의 대를 잇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어요. 어머니가 약사시거든요.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약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허나... 질풍노도의 시기에 공부를 하지 않았던 거죠. 

그 무렵에 연극을 시작했어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에는 연극부를 했죠. 

애초부터 꿈이었다기 보단 자연스럽게 연기를 시작했어요. 

전공도 자연스레 연극연기를 선택했고요. 

(필모그래피를 보면 연극보다는 뮤지컬이 많으시던데요?) 시작을 뮤지컬로 했어요. 

뮤지컬을 시작할 때 당시 최무열 음악감독님, 유해정 작가님, 차경찬 작곡가님이 같은 교회 팀에 크리에이티브팀이었어요. 

거기서 오디션을 보고 뮤지컬을 시작하게 됐죠. 최근까지 올라온 <세인트 폴>이라는 작품인데 그 작품이 제가 한 작품이에요. 


Q. 창작활동을 하면서 연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가요?

연기가 재밌었다기보다는 사람 앞에 나서는 게 재밌었던 것 같아요. 속된 말로 나댄다고 하죠.(웃음)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는 걸 좋아했어요. 

연기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재미를 느낀 건 대학교 입학해서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그때 ‘아, 연기가 이런 거구나. 너무 좋다. 재밌다.’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면서 제 신념도 철학도 생기게 된 것 같아요. 


Q. 연기를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되는 작품이 있나요?

계기가 된 작품이 있었다기보다 대학교 첫 수업에 교수님께서 이렇게 질문을 하셨어요. 

“너희는 왜 연기를 하니?”라고. 어떤 친구들은 스타가 되겠다, 어떤 친구들은 돈을 많이 벌겠다고 대답을 하더라고요. 

좀 오그라들지만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사랑을 얘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덕스토리>라는 작품에서 첫 배역을 맡게 됐어요. 그 작품을 1년 동안 하면서 많은 것을 겪은 것 같아요. 

어두운 면과 밝은 면, 무대 위에 보람도 느끼고 포기하게 되는 절망적은 순간들을 다 경험했어요. 

그 다음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이 몇 년 전에 한 <들풀2>예요. 제가 서른 살이 되면서 밴드활동을 2년 동안 했었어요. 

10년 간 저축한 돈을 음반에 쓰면서 경제적인 어려움과 음악의 힘듦, 아픔, 인디밴드는 참 어렵구나하는 것들을 느꼈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날아라, 박씨>로 다시 공연으로 돌아왔죠. 그런데 <들풀2>를 하면서 깨닫게 된 거예요. 

‘야, 너는 무대에 있어야 한다. 딴 데 가지 마라. 준겸아, 너는 공연을 해라. 배우를 하렴.’ 

<들풀2>가 배우로서 다시 설 수 있는 계기를 준 작품이에요. 

제가 한 작품들은 화려한 작품들이 없어요. 제 프로필 보시면 라이선스 작품이 거의 없거든요. 거의 다 창작이에요. 

그래서 작품들이 다 의미가 있어요. 희한한 게 제 삶의 아주 알맞은 타이밍에 작품들을 만나요. 그때 마다 깨닫게 해줘요. 

무대에 선 지도 10년 넘었고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작품을 또 만나면 ‘아이구, 내가 자만했구나, 교만했구나, 이러면 안 되는구나!’ 

매번 작품을 만날 때마다 생각해요. 특히 이번 <아나키스트의 아내>의 같은 경우는 또 거의 화룡정점이죠. 

올해 2017년도에 작품들을 쭉 봤었을 때 마지막 지점이죠.(웃음)



Q. 그럼 이번 뮤지컬 <아나키스트의 아내>를 통해 새롭게 깨닫게 된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작품에 참여하고 어떠한 배역을 맡았을 때 캐릭터를 분석하고 몸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항상 하던 방법대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거예요. 

웬만하면 어느 정도 감을 잡기 마련인데 감을 못 잡겠는 거예요. 

<아나키스트의 아내>가 쇼케이스 형식으로 30분 했었을 때도 이회영 역할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한 번 해봤으니 조금 여유롭게 더 깊이 들어가 보자고 생각해서 김준겸이란 배우가 작품을 했었을 때의 루틴을 따라서 

쭉 걸어가고 있었는데 모르겠는 거예요. 계속 암흑 안에 있는 것 같은 작업이었죠.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 작품을 하면서 좀 더 겸허해지고 아직 갈 길이 멀었구나하는 것들을 정확하고 따끔하게 충고해주는 작품이에요. 


Q. <아나키스트의 아내>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대본이 좀 늦게 나왔어요. 극단 더늠이 연말에 작품이 몰려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계속 작품을 해왔는데 ‘내가 그동안 어떻게 했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대본을 보는데 아-무런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그냥 까만 거예요. 

물론 대본이 없는 과정 속에서도 배우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방대하고 등장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우리는 무대 위에서 여섯 명이서 보여줘야 하니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 시간이 있어서 대본이 늦게 나왔다고 해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죠.

늦게 나와서 물론 힘들었죠. 일단 물리적으로 외워야하니까(웃음). 


Q. 독립운동시절의 이야기는 참 방대한데 <아나키스트의 아내>에서는 등장하는 인물은 적은 편이에요.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규준, 규서, 박씨, 은수, 이회영, 이동영 6명이지만 여러 독립 운동가들이 합쳐져 있다고 보시면 되요. 

역사적으로 규서가, 역사적으로 규준이가 이렇게 했다라고 보기보다는 

그때 당시에 상해 임시정부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든 정부, 그리고 이회영의 아나키즘, 

그 사람들을 함축시켜서 규준에게, 규서에게 혹은 이회영에게 담겨있다고 보시면 되요. 


Q. 아나키스트에 대해 찾아봤더니 무정부주의자라는 말이 좀 부정적인 의미를 닮고 있다고 해서 

    제대로 풀면 자유연합주의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이회영 선생을 연기할 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하셨나요?

그때 당시의 세계적인 흐름이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제국주의로 넘어오는데 그 사이에 아나키즘이 생겨났어요. 

이회영 선생은 국왕파예요. 고종황제 밑에서 벼슬도 하고 나랏일을 했었던 사람이죠. 

그래서 근본적으로 왕권의 강화, 왕권의 확보가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서고 

그로 인한 독립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분이에요. 

그런데 이회영 선생이 중국으로 망명을 가면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이후 어마어마하게 파가 갈라지지 않습니까. 

그 사이에서 아나키즘을 선택한 거예요. 

가장 온전한 독립을 위한 이념은 무엇인가를 봤을 때 아나키즘이 맞다고 생각하고 선택한 거예요. 

독립을 하기 위해 상해, 블라디보스토크에 임시정부들이 있었는데 독립을 위한 방향이 달랐죠. 

이회영 선생은 서로 싸우지 말고 독립운동을 총괄하는 본부를 세워서 서로 참여해서 통합체로서 독립을 한 후에 이야기하자고 하죠. 

그것이 아나키즘을 선택하게 된 바탕이라고 생각해요. 

아나키스트들은 무장투쟁을 했어요. 왜냐면 남의 손 빌리고 싶지 않으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아나키스트와 테러리스트를 같게 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이회영 선생님이나 함께 아나키즘을 선택한 신채호 선생님 같은 분들은 

사회주의, 민주주의와 같은 정부와 국가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서 신뢰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Q. 중간에 반주 없이 혼자서 이를 악물고 노래를 부르던데. 어떤 마음으로 부르는 건가요?

그게 신흥무관학교 교간데 그거는 송가라고 생각해요. 고종을 떠나보내는 이회영이 고종에게 할 수 있는 거 하나. 

그거밖에 없는 거죠. 유일하게. 


Q. 역사 이야기도 담고 있지만 그 안에 이회영의 가족의 이야기도 많이 담고 있어요. 

제목이 <아나키스트의 아내> 잖아요. 사실은 저희가 대본이 늦게 나와서 늦게 알았는데(웃음) 결국 가족이야기라고 하시더라고요. 

가족끼리 마음 아프게 그 시대에 바람 따라 흩날렸다가 가장 중요한 내용이에요. 저희는 그것만 일단 온전히 보여드린다면 되는 거죠. 

연출님이랑 이야기하고 연습하다보니까 역사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가족애를 놓치면 안 되겠더라고요. 

가족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박씨’였어요. 

독립운동가의 아내가 둘이 나옴으로써 ‘엄마’라는 큰 상징성을 대변해주니까 좀 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풀 수 있었어요. 

저 또한 이회영 역을 하면서 그들을 통해서 이 사람도 가족의 일환이며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됐죠. 

독립운동가라고하면 이미지 자체가 강인하고 신념이 올곧은 사람으로 자리 잡고 있잖아요. 

그런데 박 씨와 은수를 만났을 때 이회영도 사람이고 남편이고 아빠라는 걸 표현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죠. 

역사이야기이면서도 그 안에 살아갔던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Q. 이회영 선생님의 존경스러운 점, 닮고 싶은 점과 닮은 점이 있다면?

제가 너무 하찮아서. 일단 이회영 선생님이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 국왕파라고 알고 계시지만 제가 만난 이회영은 행동주의자예요.

누구나 생각할 수는 있잖아요. 그걸 행동으로 옮겼다는 거죠. 

이회영 선생님이 쓴 재산이 600억이라고 되어있는데 급처분해서 600억이지 실제로는 2조 정도라고 해요. 

나라가 빼앗겼다고 해서 지금 시대에 누가 2조를 들고 망명을 해서 독립운동을 하겠어요. 

이회영 선생님은 행동 주의자였던 거예요. 첫 장면에서 꿈을 가지고 “가자!”고 하잖아요.

이미 벌써 그 장면에서 저는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닮은 점은 우리 공연에서 독립운동세력 단결에 내가 걸린다면 돌아가겠다고 하는 장면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살아갈 때 내가 아니면 갈게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나 아니야? 왜 아냐!’ 이럴 때가 많죠. 모든 경우에 제가 마음을 털 순 없어요. 

하지만 최근 2년 간 미련이 많이 남고 욕심도 나고 아쉬운데도 ‘나는 털고 나갈게.’ 하는 타이밍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회영 선생이 독립운동세력에 방해가 된다면 난 갈게라고 하는 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부분이 저랑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요. 

대단한 건 아니지만 쉽진 않더라고요. 이회영 선생님은 상황이 다르니까 어떠셨을지 모르겠어요. 

잘 털어내진 못하지만 “죄송합니다, 못하겠습니다.” 할 때가 있죠. 

이회영 선생님이 너무 대단하셔서 제가 따라갈 순 없지만 거창하진 않지만 그런 부분들이 닮았다고 생각해요. 


Q. <아나키스트의 아내>에서 제일 좋아하는 넘버가 있으신가요?

제일 좋아하는 넘버는 마지막에 부르는 “우리나라 우리조국”이란 넘버예요. 가사가 되게 좋은 거 같아요. 

단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젊지 않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회영이 잘난 척하지 않고 진솔하게 하는 말이 아닌가 싶어요. 

그 넘버가 이번 공연을 만들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넘번데 작곡가랑 많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곡이 나오고 직접 불러보면서 같이 의견을 나눴죠. 가장 공을 들인 곡이기도 하고 해서 가장 애정이 있어요. 

그 노래가 더 길었으면 좋겠고 계속 불렀으면 좋겠는데(웃음). 

삶을 이야기하잖아요. 이회영의 유언 같은 노래라고 생각해요. 그때 당시 독립을 위한 많은 시도들이다 실패로 돌아가요. 

아마 성공에 대한 기대를 그때 당시에는 하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이번 일을 하면 다른 이에게 틈이 생기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이회영 역시도 가는 길에 돌아올 생각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Q. <아나키스트의 아내>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마지막에 은수와 박 씨가 만나요. 그 소용돌이 안에 그 안에서 만나는 운명의 두 여자. 

아내이자 엄마인 그들이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 장면을 팀 입장에서 온전하게 전달해드릴 수 있으면, 독립이건 뭐건 다 떠나서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객석에서 관객 분들이 보고 공감할 수만 있다면 <아나키스트의 아내>는 완성된 거죠.



Q. <들풀2>, <심우> 등의 작품을 통해서 역사적인 인물들을 계속 연기하고 있는데.

제가 마치 독립운동가가 된 것 같아요(웃음). 사극, 구한말, 조선시대도 갔다 오고 백제도 갔다 오고. 

크리에이티브팀에서 제 목소리가 사극에 잘 어울리는 톤이어서 좋아하시더라고요. 

제가 역사극만 하는 건 아니에요. 다른 것들도 하는데 눈이 띄는 역할이 역사극이어서 그렇지(웃음). 

역사 내용을 담은 극을 할 때마다 스스로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배우로서가 아니라 인간 김준겸으로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감히 말씀드리자면 내 안에 이야기, 내 안에 정신이 온전하고 바로 서야 

관객 분들에게 정확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철학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역사극을 하면서 역사 인물들을 분석을 통해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제 스스로가 삶을 반성하게 되고 고치려고 노력하게 되는 거 같아요. 

제 삶 자체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들, 그런 지점들이 생기는 거죠.


Q. 실존인물 vs 만들어진 캐릭터를 접근할 때의 차이점이 있나요?

이번 <아나키스트의 아내>를 준비하면서 현존하는 우당기념관에도 가지 않았고, 이은숙 여사님이 쓰신 책도 읽지 않았어요. 

이전에 한 <심우>라는 작품은 한용운 선생님의 이야기였는데 너무 열심히 공부를 했더니 배우로서의 창의적인 생각들이 막히더라고요. 

역사적인 인물의 말, 성격 등이 당사자가 말하는 게 아니라 주위에서 말한 거란 말이죠. ‘그런 것 같더라.’라는 걸 써 놓은 거거든요. 

이미 외부의 시선을 타고 의견을 탄 거죠. 그 이미지에 갇혀서 앞으로 못 가겠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아나키스트의 아내> 이회영 선생님을 준비할 때는 그때 당시에 있었던 일을 신문으로 엮어낸 책을 계속 읽었어요.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고 일상의 숨도 담겨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이회영 선생님이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면서 무슨 숨을 쉬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 신문을 보니까 농민들이 지주들한테 다 빼앗겨서 쌀 한 톨 못 받고 친일파들한테 돈도 다 빼앗겼는데 

또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숨들, 어디의 독립운동가가 시도했는데 죽었다는 숨들, 

지금은 그 지주들이 돈을 벌어서 공장을 세우고 있다는 숨들. 

이회영으로서 중국에서 망명생활 하면서 그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떤 숨을 쉬었을까,  어떻게 절망을 했을까, 어떻게 기뻐했을까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역사에 남아 있는 이회영 선생님 보다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한적인 정보를 가지고 

어떤 숨을 쉴 수 있었을까에 대한 것으로 많이 접근을 했죠. 


Q. 했던 작품 중 제일 아끼는 캐릭터가 있으신가요? 

제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캐릭터는 <들풀2>의 박래규입니다. <들풀2>를 만나면서 저 자신도 변한 거 같아요. 

특히 무대를 생각하는 태도와 자세가요. 김준겸이라는 배우는 ‘박래규’를 만나기 전과 만난 후로 나눠지는 거 같아요. 

그때 만나면서 정치, 사회,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제 삶 안에서 많아졌고 

‘박래규’를 만나면서 무대에 대한 경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배우들이 합심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 

그것이 온전히 이루어진다면 객석과 뜨거움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그래서 <들풀2>의 박래규가 제 삶에서도 그리고 무대 위에서도 가장 저를 많이 바꿔놓은 캐릭터예요. 


Q. 배우님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신념이 있으신가요?

되게 식상하고 오래된 말인데 거짓말 안했으면 좋겠어요. 특히 저에게요. 

사람이 살다보면 무시를 당할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저도 괜찮지 않죠, 사람이니까.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은 척을 하는 거예요, 제가. 

내가 마치 진정한 대학로의 아티스트, 예술가인거 마냥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아닌데. 나도 씁쓸한데. 

제가 스스로한테 속이고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조차도 진실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신념이에요. 

내가 좋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힘들죠. 하지만 제 삶 속에서 그러면 무대 위에서도 그럴 수 있으니까 좀 더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스스로를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뭐라도 된 것처럼 잘난 척하지만 그것도 다 거짓이거든요. 

그 조차도 내려놓고 진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신념이에요. 

제가 맡은 작품이 진실하고 용기 있었으면 좋겠어요. 


Q. 좋은 공연이란?

좋은 공연은 첫 번째로 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공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야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좋음에 대해서 모두가 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데 각자의 좋음을 공유할 수 있는 공연이 좋은 공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고 대사를 했을 때, 불순물이 끼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전해졌을 때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온 관객분이라도 무대의 좋음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 공연이 아닐까요? 

좋은 공연은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들도 삶에 치이고 계속 바쁘게 하다보면 기술적으로 무대 위를 채워요. 

객석에서 봤을 때는 문제가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고민하지 않고 고민하는 대사와 노래와 춤이 좋은 공연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김준겸 배우는 배우라기보단 대학 선배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이 했던 경험을 덤덤하게 들려주는 사람 좋은 선배의 냄새가 났다.

먼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싶다는 사람,

그래야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배우.

어쩌면 김준겸은 천상 배우인지도 모르겠다.